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플라잉 핀 (문단 편집) == [[육상]] == 지금은 케냐, 에티오피아 등이 지배하는 장거리 육상은 원래 핀란드의 메달밭이었다. 유독 핀란드인들이 장거리 육상에서 활약하자 누군가가 이에 '플라잉 핀'이라고 부른 것이 이 별명의 시초이다. 초대 플라잉 핀은 '''하네스 콜레마이넨'''. [[1912 스톡홀름 올림픽]]에서 5000m, 10000m, 크로스컨트리 3관왕의 위업을 달성했다. 이후 [[마라톤]]으로 종목을 바꿔 [[1920 앤트워프 올림픽]] 금메달까지 추가해서 통산 4개의 금메달을 획득했다. 핀란드의 육상 중장거리 지배가 본격화된 것은 [[1924 파리 올림픽]]이었는데, 이 때 핀란드는 육상에서 획득한 17개의 메달 중 13개를 마라톤 포함 중장거리에서 획득한다. 그 중심에는 세기의 라이벌 '''파보 누르미'''와 '''빌 리톨라'''가 있었는데 이 둘이 플라잉 핀 칭호를 계승한 선수들이다. 누르미는 이미 1920 올림픽 때 10000m 금메달 및 크로스컨트리 개인전과 단체전 금메달로 3관왕을 달성했었고, 이후 리톨라가 1924년에 올림픽 무대에 데뷔하면서 둘의 치열한 라이벌리가 시작된다. 이 대회에서 누르미는 '''5관왕'''이라는 위업을 달성했는데, 그 중 5000m 및 개인 크로스컨트리는 리톨라와의 맞대결에서 승리하면서 얻은 금메달이었다. 리톨라는 누르미가 출전하지 않은 1500m와 3000m장애물 경기에서 우승하는 등 '''금메달 4개와 은메달 2개'''에 만족해야 했다. [[1928 암스테르담 올림픽]]에서 둘의 맞대결 2라운드가 치러진다. 이 대회에서 둘의 맞대결은 세 차례 있었는데, 가장 먼저 치러진 10000m에서 누르미는 리톨라보다 '''불과 0.6초 먼저''' 결승선을 통과하면서[* 단거리가 아니라 무려 10000m 경기이다. 장거리에서 0.6초면 100m로 따지면 0.006초 정도의 머리카락 하나 정도 격차였던 것.] 먼저 1승을 거둔다. 그러나 다음으로 치러진 5000m에서, 리톨라는 누르미를 '''불과 2초 차이'''로 따돌리고 금메달을 목에 걸면서 반격. 둘의 대결은 1승1패가 된다. 자연스레 마지막 맞대결을 놓고 초미의 관심이 집중되었는데, 마지막으로 치러진 3000m장애물에서는 싱겁게도 '''리톨라가 중도 기권'''하면서 누르미의 승리, 둘의 대결은 최종적으로 2승1패 누르미의 판정승으로 끝난다. 그런데 정작 금메달은 제3의 인물 토이보 루콜라가 차지하고(...)[* 물론 이분도 핀란드인이다!] 누르미는 은메달을 목에 건다. 아무튼 둘의 불꽃튀는 라이벌리는 플라잉 핀이란 별명이 대중화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후 [[1932 LA 올림픽]]과 [[1936 베를린 올림픽]]에서 3000m 장애물 2연패를 달성한 '''볼마리 이소홀로''', 한 투어 대회에서 세계기록을 다섯 개를 갈아치우면서 육상계에 충격을 선사한 '''타이스토 마키''', [[1972 뮌헨 올림픽]], [[1976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연속 5000m, 10000m 2관왕을 달성한 '''라세 비렌''' 등이 플라잉 핀의 호칭을 계승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